고 왕 영두 장로님 장례식 설교 전문 (1)
송종남 목사
마태복음25:20-23
“착하고 충성된 종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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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은 누구에게나 힘들고 슬픈 것입니다.
더 이상 이 세상에서 그 사람을 볼수 없고 만날 수 없다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럽고 힘든 일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이고 이 세상을 떠나면 우리를 위해 거할 곳을 마련해 놓으셨다고.... 예수님이 분명히 말씀하신 것을 믿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함께 있었던 사람이 ...더 이상 내 옆에 없다는 사실 앞에서... 어디로 갔을까? 그분이 어디로 갔을까? 그런 생각까지 들게 만듭니다.
왕영두 장로님은 평소에 참 조용하신 분이었습니다.
체구도 작으신 데다가 조용히 신앙생활을 하셔서 ...함께 같은 교회를 수십년 섬겼어도 말을 나눠보지 않은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코로나 전부터 몸이 안 좋으셨었는데.. 코로나 사태가 와서/ 교회문을 닫았다가 열렸어도 교회에 오실수 없었고...거의 2년동안 투병을 하시다가 돌아가셔서 장로님을 오랫동안 뵙지 못한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코로나사태로 인해서 마음놓고 심방을 할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저를 비롯해서 안장로님과 강장로님, 주장로님, 배목사님 ..그리고 몇몇분들만 가끔 장로님을 찾아 뵈었던 것으로 압니다.
그래서 장로님이 천국으로 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몇몇 교인들은 아직도 젊으신데 왜 갑자기? 떠나셨느냐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장로님을 뵌 것은: 2주전 우리교회 창립 42주년이 되는 주일날 아침이었습니다.
그날은 예배를 오후 4시에 드렸기에 병원에 계신 장로님을 아침10에 찾아 뵙면서,
오늘이 교회 창립 42주년이되는 날이라고 말씀드렸고, “왕장로님도 예쁜 것을 좋아하시는 분이라 꽃을 사왔다”고 하면서 놓아드렸더니.. 빙그래 웃으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만... 우리는 날마다 장로님의 건강을 위해서 기도했고 -- 어서 속히 회복되셔서 성전으로.... 예배의 자리로 돌아오시기만을 바라고 기도했었는데 ....장로님은 홀연히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사랑하는 남편, 아버지, 할아버지를 이렇게 홀연히 떠나 보낸 가족들의 슬픔과 또 우리 성도들의 슬픔이 너무나 크지만.... 지금은 아픔도 없고 눈물도 없고 슬픔이 없는 천국에서 하나님의 영접을 받고 영원한 안식과 평안 속에 드셨을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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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우리교회에 부임해 온 11년 전에 이미 장로님은 교회의 행정직에서 물러나셨던 분이라서/ 함께 사역은 안했지만.. 장로님이 자리를 지키고 계시다는 것은 늘 든든했습니다.
장로님은 우리교회에 몇 명 안남아 계시는 우리교회 창립멤버중의 한분이셨고 이민 1세대로서 우리교회의 존경받는 어른이셨습니다.
성전에서 변함없이 예배의 자리를 지키고 계시는 것만으로도 후배들에게는 큰 힘이 되셨던 분입니다.
교회 일을 하다보면 사람들끼리 원치 않아도 조금씩은 얼굴을 붉히고 그럴때가 있는데.. 제가 알기로는...우리 왕로님은 그런 사람들이 한 사람도 없는 줄 압니다.
왕장로님은 장로님이라서가 아니고... 그냥 사람 자체가 좋은 분이셨습니다.
양반중의 양반이셨습니다. 친절한 분이셨고, 젠틀맨이셨습니다.
법없어도 살 분이라는 말은 왕장로님을 두고 생긴 말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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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 장로님을 마지막 보내드리는 이 자리에서 장로님의 삶을 간단히 돌아보면서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가 어떤 믿음의 삶을 살아야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①장로님은 자신이 맡은 일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정확하고 철저하셨고 성실하신 분이었습니다.
장로님은 델라웨어 대학에서 평생 교수로 일하셨습니다.
당신의 지식을 가지고 많은 제자를 길러내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학문적인 영향을 끼치셨습니다.
예전엔 우리교회에 한국에서 오는 비지터들이 매 학기마다 엄청 많았었습니다.
물론 다른 교수님들의 초청을 받아서 오신 분들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왕장로님의 초청으로 오신 분들이라는 소리를 제가 들었습니다.
한국의 공무원들, 교환교수들, 회사원들, 그리고 학생들이 이곳에 많이 와서 왕장로님의 지도하에 공부를 하고, 연구를 하고, 학위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갔고 전 세계에서 활발하게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장로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한국에 알렸더니...그 훼이스북을 보고 수많은 댓글이 달렸습니다.
이곳에 사는 미국제자들은 장로님이 아프신 것을 몰랐으니까 갑작스러운 소식에 충격이 더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했고 슬퍼했습니다.
장로님은 훌륭한 학자셨습니다. 그리고 존경받는 스승이셨습니다.
장로님아래에서 공부를 하고 지도를 받고 한국으로 돌아간 사람들 중에는 장관급 차관급 되는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많은 비지터들이 장로님의 초청으로 이곳에 왔을 때 장로님은 그분들에게 아마 직접적으로 교회에 나오라는 말씀은 안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은 다 우리교회에 왔었습니다.
그분들 중에는 한국에서 교회를 다니던 분들도 있고 교회를 전혀 모르던 분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들은 이곳에 왔을 때 적어도... 한번이상 우리 교회에 왔었고
어떤 분들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믿습니다. 그분들이 이곳에 와서 장로님을 통해서 교회에 나왔던 것이 씨앗이 되어서 그들 중에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일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분명이 있을 것이라 저는 믿습니다.
왕 장로님이 비지터들에게 비록 입을 열어서 예수 믿으라는 말씀은 안하셨을지라도..
그리고 선교지로 나가서 한번도 선교활동은 안하셨을지라도 ....
장로님의 초청으로 여기에 와서 공부를 하고 연구하러 온 사람들에게 끼쳤던
장로님의 선한 영향력은 그분들의 삶에 좋은 믿음의 본보기가 되었다는 것을 저는 분명히 믿습니다.
우리교회에서 왕장로님이 가장 전도를 많이 하신 분이라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러분, 전도와 선교는 “예수 믿으라”고 소리쳐 외치지 않아도 할 수 있습니다.
선교지에 가지 않아도 할 수 있습니다. 전도는 삶으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삶이 곧 전도이고 선교입니다.
우리의 삶을 보고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게 되고 하나님을 보여 줄수 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장로님은 훌륭한 학자였고 스승이셨습니다.
그리고 훌륭한 학자의 삶을 살면서 삶으로 하나님을 몸소 보여주셨던 분이었습니다.
②그리고 장로님은 가정에서 좋은 남편이었고 좋은 아버지셨습니다. 좋은 할아버지셨습니다.
자녀들에게 보여주신 장로님의 믿음의 본은 좋은 믿음의 유산이 될 것입니다.
이제 아버지를...남편을...할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더 이상 볼 수는 없지만...
왕장로님이 보여주셨던 믿음은 자녀들의 가슴속에서 영원히 살아있을 것입니다. .
이곳에 참석한 가족들, 자녀들은 장로님의 믿음의 유산을 영원히 이어가는 복된 자녀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③그리고 왕장로님은 무엇보다도 참 크리스천 이셨습니다.
주님을 사랑하고,교회를 사랑했고, 예배를 사모하며 사랑하셨던 분입니다.
아프신 중에도 매주일 예배를 영상으로 드리셨다는 소리를 제가 전해 들었습니다.
교회에서 대면 예배를 드리게 되었을 때... 왕권사님도 성전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싶었지만 왕권사님이 교회에 오시면 장로님이 혼자서 컴퓨터를 켜고 ...예배를 드리실 수 없어서 왕권사님이 함께 가정에서 예배를 드린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마지막 힘까지 다해서 장로님은 예배를 드리셨습니다.
음식을 입으로 잡수실 수 없어서 비록 튜브로 음식물을 투여하는 시간이 왔어도 ...
장로님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포기 하지 않으셨고 하나님의 말씀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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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왕장로님의 이런 삶이/ 우리 믿음의 후배들에게/ 무엇을 전해 줍니까?
왕장로님이 마지막까지 포기 할수 없었던 예배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예배가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예배가 무엇인지?를 장로님은 몸소 보여주시고 떠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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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호흡 다하도록 ...우리는 기도해야하고 찬양해야합니다.
마지막 숨이 멎는 순간까지 우리는 예배를 포기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누가 예배를 드리고 싶으면 드리고 안드리고 싶으면 안드려도 된다고 했습니까?
누가 피곤하면 예배 안드리고, 안 피곤하면 드린다고 했습니까?
예배는 우리의 생명입니다. 우리의 호흡입니다. 살아갈 힘입니다.
마지막 호흡이 다하는 순간까지 우리는 하나님을 불러야 하고,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하고 기도해야하고 찬양해야합니다.
이것이 왕장로님이 우리들에게 남겨주고 가신 강력한 멧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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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장로님은 누구보다 교회를 사랑하셨습니다.
비록 교회의 일선에서 은퇴를 하셨지만 그분의 마음속에는 늘 델라웨어 감리교회가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늘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셨고 사랑과 염려로 뒤에서 힘이 되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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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님이 돌아가시기 전에는 혼자서 자가 호흡을 하실 수가 없어서... 기계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심방을 가거나 누가 찾아가면 종이에다가 펜으로 써서 대화를 나누곤 했습니다.
우리교회 강장로님이 돌아가시기 몇일 전에 병원으로 장로님을 찾아뵈었다고 합니다.
그때도 장로님은 펜으로 글씨를 써서 대화를 하셨습니다.
방문하는 사람들은 그런 장로님이 너무 안쓰럽고 힘들어 보이니까.. 말씀 안하셔도 장로님의 마음을 다 안다고 ..안쓰셔도 된다고 해도.... 왕장로님은 당신의 마음을 간단한 글로 써서 대화를 하시곤 했었습니다.
강장로님이 찾아가셨을 때 썼던 말이 무엇인지/ 여러분 아십니까?
“교회에 성도들은 몇 명이나 나오는가?”쓰셨고/ “교회 재정은?”이라고 쓰셨답니다
코로나 사태로 작년 한해에 많은 교회들이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우리교회도 마찬가지였다는 소식을 들으셨던가 봅니다.
장로님은 몸이 그렇게 아프시고 음식도 잡수실 수가 없고 말씀조차 하실 수 없는 상태가 되었는데도... 오직 교회를 생각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혹시 성도들이 교회에 많이 못나오면/ 교회재정이 어려운 것은 아닌가?
당신이 그렇게 아프고 힘든 병상에서도.. 교회를 염려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당신은 마지막 호흡을 몰아 쉬면서도 교회를 생각하셨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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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왕장로님이 그런 글씨를 쓰셨다는 얘기를 듣고/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왕장로님은 이런 분이셨습니다.
교회를 너무나 사랑하셨습니다. 교회는 장로님의 인생이었습니다.
장로님이 언제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교회를 향한 장로님의 사랑은 곧 주님을 향한 사랑이었습니다.
마지막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장로님은 예수그리스도의 몸인 =이교회를 가슴에 품고 계셨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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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마태복음 25장 말씀은/ 어떤 주인이 종들에게 다섯달란트 두달란트 한달란트를 맡기고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서 계산하는 말씀입니다
다섯달란트 받았던 종과 두달란트 받았던 종들은 그것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고 섬기고 봉사해서.. 처음 주인이 주었던 것의 두 배를 주인에게 돌려주었습니다.
그랬을 때 /주인은
“ 참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와서 나와 함께 기쁨을 나누자” 라고 말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