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에는 공식이 있고 자연에는 법칙이 있어서, 어떤 문제든지 수학 공식이나 자연법칙을 암기해 그대로 적용하면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공식이나 법칙이 들어맞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시험에 들기도 하고 절망에 빠지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에 따라 금식하고 부르짖어도 응답을 얻지 못하고 상황이 악화된다면 우리는 더 큰 혼돈에 빠집니다.
요셉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최선은 언제나 최악의 결과를 낳았습니다. 믿음의 원칙이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끝까지 신뢰했기에, 요셉은 30세에 이집트의 총리대신으로 나라를 치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의심하지 않고 끝까지 그분을 신뢰한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의 기도가 지금 바로 응답되지 않는 이유는 아직도 하나님과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과의 문제를 덮어 둔 채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축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이 신앙의 원칙과 맞아떨어지지 않을 때, 하나님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이 다름을 기억하십시오.
“왜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때에 오시지 않는가?”라는 질문에는 중요한 영적 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기다림, 곧 인내라는 비밀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입니다. 기다릴 줄 모르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정말로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믿는다면, 지금 외양간에 소도 없고 포도나무에 열매도 없으며 밭에 소출이 없다고 하더라도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림을 통과하지 않은 믿음은 가짜입니다.
정말 위대한 멘토는 기다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희망이란 아직 오지 않은 것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기도 응답만큼이나 중요한 축복은 기다림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기도의 응답이 없다며 믿음을 버리고 사랑을 깨뜨리고 희망의 문을 닫습니다. 기다림에는 시련과 고통이 따르지만, 기다림이야말로 믿음의 정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고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복이 있습니다. 믿음과 사랑은 기다림이고, 희망은 기다림의 기술입니다.